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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장려

원격 수업

위상복作

수성구

수험생을 지도하는 고등학교 교사의 입장에서,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극복해 입시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구인의 자존감을 높였으면 하는 바램을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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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수업

  텅 빈 교실, 아이들이 사라졌다. 조용히 책을 펴고 기다리는 아이도 화장실이나 매점에 다녀오느라 허겁지겁 자리에 앉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때늦은 꽃샘추위까지 더해 을씨년스러운 교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실장의 차렷! 경례!’도 없다. 교탁에 놓인 노트북을 통해 아이들을 만난다.
  그저께 수업 중 인터넷이 잠시 끊겼다가 이어졌다. 전국의 학교가 동시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진행하니 인터넷도 몸살을 앓는 모양이다. 끊긴 줄도 모르고 준비한 수업 자료를 넘기며 신나게 설명했다.
 
갑자기 휴대폰이 요란스러웠지만 지금은 수업 중이니 나중에 전화 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만 보냈다. 교무실에 도착해 확인해보니 한 시간 내내 공염불만 올린 꼴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당황했을까.

  어제는 연합고사 감독을 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시험을 치고 선생은 빈 교실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서 하는 감독이다. 시험이란 공정성과 객관성이 필요하기에 엄격한 감독을 해야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모든 것을 아이들의 양심에 맡긴 채 그저 출석이나 체크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시험 진행만 알려줄 뿐이다. 기본도 갖추지 못한 평가에 아이들이 얼마나 황당했을지. 도대체 누가, 무엇이 교실 모습을 이렇게 뒤엎어놓은 것일까.
  두어 달 전 그날. 한 주일 사이에 온 천지가 뒤집어졌다. 도로마다 끝없이 이어지던 차량 행렬도 뜸하고, 도심 거리를 구름 떼 마냥 누비고 다니던 인파도 왁자지껄했던 웃음소리도 뚝 끊겼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붐비던 가게들도 불 끄고 문 닫은 채 근심스레 웅크리고 있다. 행사도 취소, 모임도 취소, 개학도 연기, 온통 취소 아니면 연기라는 문자만 휴대폰을 가득 메웠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외출을 자제하라는 문자가 휴대폰에 떴건만, 마침 그날이 당직이라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야 했다. 마스크와 장갑을 단단히 챙기고 옷도 두툼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마치 완전무장하고 전선으로 달려가는 군인 같다고나 할까. 도시락을 쥐여 주며 조심하라는 말을 건네는 아내의 얼굴도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여태 직장에 몸담으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부담스런 출근길이다.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때문에 몇 해째 운전을 멀리했건만 그날만은 달랐다. 어떤 차를 잡아타도 안전하다고 믿을 수 없으니. 거리를 누벼야 할 택시는 하릴없이 길가에서 졸고 있고, 승객 없는 시내버스는 휑하니 뚫린 거리를 마치 고삐라도 풀린 것처럼 내달린다. 땅속을 오가는 지하철도 텅 비기는 마찬가지리니. 차는 있는데 탈 사람이 없는 이런 풍경은 유령도시에서나 볼 수 있을는지.
  학교에 도착해 마스크를 벗자 화들짝 놀란다. 주변에 확진자가 있다며 다시 착용하라고 행정보조원이 넌지시 일러준다. 교무실 풍경이 더 가관이다. 동료끼리 마주하지도 않고 말도 섞지 않는다. 점심도 준비해온 도시락을 돌아앉아 먹는다. 엊그제까지 살갑게 지낸 동료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늪, 이게 내가 근무하는 직장이란 말인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곳, 문득 군대 시절 드나들던 지뢰밭이 떠오른다.
  퇴근길에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을 찾았다. 몇 군데나 들러도 허사였다. 마트도 마찬가지다. 마스크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빈 지 오래, 하나둘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눈길이 물이나 라면 같은 비상식량에 쏠린다. 생필품 공급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공포감 때문인지, 집 밖으로 나오기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는 모른다. 입을 닫은 사람들이 먹거리만 챙겨 들고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TV는 우한 코로나로 도배를 한다. 날마다 수백 명씩 쏟아지는 확진자를 세기도 바쁘다. 감염자 가운데 영안실로 실려 간 소식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치료할 의료진도 부족하고, 입원할 병실도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큰 병원도 감염되었는지 응급실마다 폐쇄라는 소식만 들렸다. 기어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대구 봉쇄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하니 이 사태가 어디까지 갈지 자못 궁금하다.
  이젠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건가. 생각할수록 끔찍스럽고 피눈물만 고였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럴 때를 대비한 위기대응 매뉴얼도 없었는지, 아니면 있어도 안 지켰는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까. 중국과 맞닿은 베트남이나 몽골도 잠잠하건만 바다 건너 우리가 막지 못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부만 믿다가 사지로 몰려야 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함성처럼 들려왔다.
  선장이 무능하면 선원이 똑똑해야 산다고.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 보다. 얼마 전부터 TV 화면이 갑자기 밝아졌다. 우리나라가 뒷수습을 잘한다고 칭찬한다는 말이 연일 뉴스를 가득 채운다. 초기 대응에서 느꼈던 씁쓸한 마음은 숨길 수 없지만, 빈말이라도 싫지는 않다. 어둡고 무거운 소식만 전해주던 뉴스 시간에 밝고 기분 좋은 소식을 알려주니 괜히 귓속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다.
  용궁 근처까지 갔다가 살아난 저력은 무엇일까. 지역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드라이브 스루 같은 혁신적인 방역체계도 반짝반짝 빛났다. 바이러스 오염을 검사하는 우수한 진단 키트의 공로도 빼놓을 수가 없다. 초고속 통신망이 잘 구축된 인터넷 강국은 역시 달랐다. 몇 차례의 비슷한 경험, 특히 메르스 때 구축한 위기대응 시스템은 어떤 전염병에도 대처할 힘을 길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높은 시민 의식은 너무나 자랑스럽다. 손 놓고 울고만 있지도 않았고, 지도자만 원망하며 포기하지도 않았다. 다급한 상황에서 생필품 사재기도 거의 없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질병관리본부의 정책도 잘 따랐다. 도시를 탈출하려는 엑소더스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은 필수이고 손 씻기는 기본이다. 물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회나 행사는 스스로 자제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지원이 특별하지도 않은 듯하다. 정치인은 자신들만의 큰 행사를 앞둔 때라 시민들 편 가르기 바빴고, 전염병 관련 예산도 나눠 먹기 급급해 보였다. 사경을 헤매다가 애꿎은 생명이 사라져갈 땐 시민들의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뭉치는 대구인의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하나로 똘똘 뭉친 시민들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했기에 더욱더 값져 보인다.
  이러한 시민 의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임금도 도망갔던 임진왜란을 물리친 의병 활동에서 나온 것일까. 나랏빚을 민초들의 힘으로 갚으려 했던 국채보상운동에서 나온 것일까. 6.25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맨몸을 던졌던 무명용사들의 호국 정신 때문일까. 독재 정권의 불의에 맞서 명덕 로터리까지 뛰쳐나가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학생들의 의거를 잊지 않은 때문일까. 아니면 조국 근대화의 주역을 담당했던 선배들의 경험 때문일까.
  나라가 큰 위기를 맞거나 격변기에는 대구가 그 중심에 있었다. 외적의 침입으로 위태로울 땐 앞다투어 몸을 던졌고, 조국이 필요로 할 땐 거침없이 나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마치 조선시대 성리학의 맥을 이어온 영남사림의 고고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지.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했고, 창살 없는 감옥처럼 답답하고 힘들어도 묵묵히 견디어냈다. 다른 도시에서 터졌어도 대구처럼 수습할 수 있었을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코로나는 잡혀가는데 아이들의 수업 집중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 처음엔 집에서 수업 듣는 게 신기한 듯 잘 따라 하더니 하나둘 곁눈질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출석만 하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이도 있고, 얼굴은 보이지만 카톡을 하거나 아예 딴짓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이런 게 원격 수업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교실 수업과는 달리 친구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선생의 잔소리도 뜸하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올 거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교실 수업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원격 수업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고 힘든 게 공부라는데,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갇혀 지내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도 앞날을 위해 해야만 하는 게 공부이거늘, 하루 빨리 흐트러진 일상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을지. 시민들이 코로나를 극복하듯이 우리 아이들도 툭툭 털고 일어나 이전보다 더 단단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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