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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우수

코로나19 격리보고서

김명준作

남구

코로나 19 양성 판정을 받은 작가 본인의 파란만장 격리 이야기.
생활치료시설로 입소했다가 대구 의료원으로 이송, 그리고 퇴원 후 까지 양성판정 받은 후 부터 음성 받기까지의 생각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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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격리보고서
 
  31일 오전 지역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통.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양성이세요.” 덤덤한 보건소 직원의 한 마디. ‘이럴수가……믿기지 않았다. “? 정말이에요?” “, 곧 입원절차 관련해서 전화 드릴테니 격리하시며 집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전화를 끊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설마 했는데……’ ‘내가 진짜 코로나라고?’
  32일 밤 11시경 또 지역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대구는 방금 다 찼고, 경주 농협연수원으로 이송해서 격리치료 받으시겠습니까?” “집에서 자가격리는 힘들까요?” 하루종일 뉴스만 붙들며 코로나 사태에 더욱 실감했던 나는 병상이 부족하고 생활치료시설 자리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경증 및 무증상자들은 집에서 자가격리하는 방향으로 지침이 결정된다길래 노파심에 여쭤봤다. “그렇긴하지만, 치료시설 가시는 게 여러모로 회복하시는데 나을겁니다. 식사하시기도 편하실테고, 무엇보다 시설이 좋아서 선생님은 운 좋으신 겁니다. 안 받으셨으면 바로 다음분에게 전화드릴 예정이었거든요.” 사실 마음 놓고 슈퍼마켓도 가기 힘들었었다. 담당자의 친절한 설명에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하였다.
 
두근두근’ ‘뭐지? 이 느낌…… 설렘인가?’ 지역 확진자가 나온 후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없었던 나는 그간 많이 답답했었나보다. 낯선 곳에 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또 다른 자극이었고 새로운 일상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살짝 설레듯 긴장이 되었다.

  33일 저녁 6시경 경주 농협연수원 도착. 쾌적한 환경, 여러 물품, 안내사항 등. 이제야 더 실감이 난다. 사실 211일부터 몸살기운이 있었던 나는 이번 감기가 손에 꼽을 만큼 아프면서도 코로나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등 여태 많은 바이러스가 지나갔지만 난 걸린 적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난 새파랗게 젊은 청춘이니까 이번 코로나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겠거니 하며 마스크도 끼는둥마는둥 지냈었다. 아픈 와중에 친한 간호사 지인들에게 코로나 검사 받아볼까라고 물어보면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에이 설마 코로나겠어요?”라는 말을 하는 동생이 있는가하면 얼른 가서 받아봐. 혹시 모르잖아.” 증상은 호전되었지만 마음 한편이 찜찜했고 설마가 사람 잡을 수 있으니 검사를 받았었지만 이내 멀쩡히 다 나아서 마음 편하게 기다렸는데 결과는 양성이었다. 판정 받자마자 나는 나와 만났던 내 친구 및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었고, 검사를 권유했다. 나와 밥도 먹고 같이 잠도 잤던 친구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처음 며칠은 지낼만했다. 집에서도 먹지 않던 삼시세끼를 격리시설에서 꼬박꼬박 먹었다. 간혹 간식에 이따금씩 딸기, 오렌지, 토마토 등 각종 과일까지 주셔서 호화를 누리는 듯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구호물품이 왔는데 빨리 나으라고 위로를 받는 듯 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닷새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뉴스를 본 찰나였을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예고 없던 눈물이었다. 전염병에 걸린 내 신세가 서러워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고마움에 대한 눈물이었다.
  여태 살아오면서 나는 내 나라가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각종 미디어는 물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나라에 대한 온갖 불만들. 나는 구태여 거들지도 않았고 반박도 하지 않았지만 내 침묵도 암묵적인 동의였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를 덮은 코로나. 날마다 늘어나는 확진자수. 밤낮없이 일하는 의료진들. 연이은 유명인사들의 기부. 그 노고와 마음을 갚기라도 하듯 단시간에 진단키트를 만든 것도 모자라 신속한 검사방법이 동원되어 삽시간에 코로나를 잡는 우리나라. 멋졌다. ‘나는 무슨 근거로 헬조선이라는 말에 동조했었을까?’ 침묵했던 지난날에 대한 부끄러운 회한이 몰려오는 듯 했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마음 편하게 쉬는 것뿐이구나.’ 회한의 눈물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 이 시간도 소중하니까, 허투루 보내지 말자! 뭐라도 하자!’ 스스로가 재난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나는 내 마음을 부여잡고 일으켜 세웠다. 식탁에 앉아 수첩을 꺼내 지난날 내가 걸어왔던 삶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스무 살부터 나는 참 열심히도 달려왔구나 싶었다. 그저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성공도 했었고 실패도 했었다. 즐겁기도 했었고, 슬프기도 했었다. 중간엔 방황도 하면서 인생의 갈피를 놓치기도 했었다. 그리고 후반 내 나름의 가닥대로 졸업식을 앞둔 마당에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졸업식이 취소된 것도 시원섭섭하지만 사실 난 당장 3월부터 출근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라니 …… 인생…… 한치 앞도 알 수 없다는 말…… 이렇게 또 새삼……그렇게 난 성찰의 시간을 가졌고 또 며칠이 지났다.
  시설에서의 생활은 자유로웠고 처음엔 그 자유가 좋았지만 이윽고 그 기약없는 자유는 나를 힘들게 했다.
  “여보세요? 네 저 검사 언제 맡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순차적으로 해드리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주내로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입소한지 이주가 다될 무렵 나는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매일아침 눈을 뜨면 같은 천장 같은 공간이었다. 텔레비전, 노트북, 스마트폰. 연결과 소통을 위한 전자기기이지만 역설적이게 나를 더 고립되게 하는 듯 했다. 스크린이 아니라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다.
  “저 내일 검사 가능한가요?” “일주일은 더 기다리셔야 될 거 같습니다. 일주일 뒤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청천벽력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기다림보다 무서운 건 그 한 공간에서 오롯이 혼자 모든 시간들을 감내해야하는 것이었다. 전화와 문자로 보내는 지인들의 위로와 격려도 그저 고요한 아우성일 뿐이었고 그들의 보통의 평범한 하루가 나에겐 오지 않을 내일 같았다. ‘……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녕 아무것도 없을까……나는 용기내서 심리지원단에 전화했고 얼른 검사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증상도 없고 아팠던 시점으로는 한 달이 지난 때였다. 다시 양성이 뜬다면 어쩔 수 없지만 모른 채 그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많이 힘드시죠?” 상담사의 한마디. 힘들었지만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저보다 더 힘든 분들 계시니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그때 알아차렸다. ‘아 나도 재난피해자구나.’ 우스갯소리로 재난영화라며 지인들에게 너스레를 떨었던 내가 우스운 찰나였다. 상황을 파악한 지원단은 시설 의료진에게 연락했고 곧 전화가 왔다.
  “여긴 인원이 많아 검사일정을 저희가 알 수 없습니다. 대구의료원은 바로 내일 검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가시겠어요?” 지원단의 발 빠른 대처로 나는 그날 저녁 대구의료원으로 이송되었고, 다음날 아침 검사했다. 주치의선생님께서도 음성일 것 같다고 하셨지만 결과는 약양성이었다. 아쉽지만 마음이 놓였다. 나갈 수 없는 답답함보다 내 상태를 몰랐던 답답함이 더 컸었나보다. 그렇게 5인실에서 난 열흘을 머물다 무사히 퇴원하였다.
  324일 퇴원당일, 병원 앞 벤치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가족을 기다렸다. 살랑대는 바람…… 봄 냄새…… 계절은 바뀌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내 방에 들어선 순간 방 전경이 살짝 멈춘듯했다. ‘…… 살았다…….’ 친구를 만나러가는 길, 일부로 버스 전정거장에 내려 걸어갔다. 시간에 쫓겨 살던 나는 시간과 걸었다. 지나가는 차 소리. 내가 걷는 인도블럭. 신호등과 전봇대전깃줄 그리고 가로수 사이로 지는 노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어.’ 친숙하면서 낯설었었고,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친구는 약속시간에 늦었다. 난 평소와 달리 화내지 않았다. 소소한 말다툼마저 그리웠던 것일까.
  나는 코로나 확진자였다. 나는 아팠었고, 코로나는 나빴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다는 것. 특별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 다만 내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다.
일상을 되찾게 해주신 의료진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었으면 좋겠다. “의료진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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