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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우수

공동체의 가치로 이겨낸 코로나19

최나래作

동구

코로나19는 누구에게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대구시민들을 보며, 공동체의 가치를 느꼈고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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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가치로 이겨낸 코로나19
 
  주말의 휴식은 짧게 느껴지기에, 월요일에 대한 부담감은 일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이런 증상을 월요병이라고 하는데 나는 월요병을 심하게 앓는 사람이었고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월요일마다 술을 먹는, 이른바 월술을 즐겨왔다. 월술은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친구와 내가 술을 먹기 위한 합리적 핑계였다. 그 후 나와 친구를 포함한 두 명 외에 객원 멤버들이 가끔 모여 일상의 애환과 고충을 술과 함께 털어내곤 했다.
 
  2월에 들어선 후, 월술의 대화주제는 우한에서 발생했다는 신종 바이러스가 되었다. 국내 1번 확진자 발생 이후 17번째 확진자가 대구를 다녀갔다는 소식에 대구는 일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경직되었고 친구는 두려워했다. 나와 달리 신종플루, 독감 등 전염병을 여러 번 겪었던 친구는 남들보다 더 빨리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그 행동이 유난스럽다 싶기도 했으나,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나도 마스크 쓰기에 동참하고 있던 때였다.
 
  217일 전국적으로 31번째 확진자가 대구에서 발생하자 대구시민들은 경악했다. 31번 확진자 이외에 또 한 명의 코로나 환자가 의심되어 동산병원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TV에서 흘러나온 그날은 마침 월요일이었고 나와 친구는 단골 고기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뉴스를 보고 있었다.
  “? 대구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대구는 지역이 좁아서 금방 퍼질낀데...”
  “혹시 우리도 잠복기인 거 아이가? 생각해보니 어제 목이 좀 칼칼하긴 했는데...”
  농담처럼 내뱉은 말이었지만 불안감이 갑자기 밀려왔다. 내가 확진자가 되어 아픈 것보다, 혹시라도 나로 인해 주변인들에게 감염 피해를 줄까 더 두려웠다. 우리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평소보다 더 빠른 귀가를 선택했다.
 
  일은 다음날부터 일어났다. 자고일어나면 대구의 확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누가 증상이 있어 자가격리 중이란다’, ‘어디에 확진자가 나와 폐쇄가 됐다더라등의 이야기가 하루에도 수십 번 들려왔다.
 
그러다가 동네에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공포는 극에 치달았고, 문 닫는 가게가 속출했으며 거리는 텅 비었다. 월술은 커녕 출근도 하지 못하는 날이 지속되었다.

 
  환자는 속출하는데 대구의 의료진과 병실은 부족했고 일각에서는 대구를 국내 코로나19 근원지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급기야 대구를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불쾌했으나 불안했고, 내 잘못이 아닌데도 죄인같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각종매체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받아 볼 수 있었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이 무렵, 코로나 예방을 위해 가장 필요한 마스크 구하기가 제일 어려웠으므로 빠른 정보 습득이 필요했고, 동시에 평소보다 높아진 금액을 감당해야만 했다.
 
  어느 날 동네마트에 마스크가 입고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총알같이 예약을 했다. 1인당 열 개로 한정했던 마스크 예약은 5분도 되지 않아 종료되었으며, 더 판매하라는 고객의 요청에 마트 관계자는 난감해 할 뿐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예약에 성공했던 나는 마스크를 쓴 채, 열 개를 구입하여 집으로 오는 길이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내게 물어보셨다.
  “아가씨..마스크 어디서 샀는교?”
  “요 앞 마트에서 샀는데 지금은 다 팔려서 없을걸요.”
  “아이고..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별 따기야...”
  할머니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심지어 마스크 뭉치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 고민하다 이내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돌아섰다. 나는 이날의 내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마스크 구입이 어려운 이웃에게 마스크 한 장 나눠주지 않던 내가 부끄러웠고 혼자 살겠다며 돌아섰던 그날의 이기적인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어쩌면 나의 시작은 이때부터였는지 모른다. 부끄러웠던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다. 마침 소외계층에게 나눠줄 천 마스크를 만들겠다는 어느 부부의 소식을 SNS에서 보았기에 망설임 없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그 부부는 얼마 전 생일 때 축하를 받아 고마웠던 마음을 이웃에게 돌려주고 싶어 마스크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마스크에 필요한 부자재는 부부의 사비로 지출했고, 마스크 제작은 나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했다. 모두 마스크를 끼고 손 소독을 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처음 만들어보는 것이어서 완성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천을 자르고 바느질을 하며 마스크를 완성했다. 완성된 마스크의 일부는 쪽방촌 거주자에게 돌아갔고, 또 일부는 사회복지시설 근무하는 분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마스크를 받은 사회복지시설에서는 선한 영향력을 이어받아 동네주민들과 함께 천 마스크를 만들어 주변의 소외계층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힘든 이웃을 돕고 함께 하겠다는 마음들이 모여 파도처럼 큰 감동으로 내게 밀려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사람이 모이거나 대면하는 모든 활동이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무료급식소도 중단 되었는데 문제는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소외계층에게는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이러한 문제에 공감했던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김밥을 싸서 나누어 주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소수의 사람들로 시작된 김밥싸기 모임은 입소문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고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모임으로 정례화되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자의 대부분이 아주머니들이었지만 나중에는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였다. SNS를 통해 소식을 듣고 참여하신 분도 있었고, 참여했던 분이 친구를 데리고 와서 동참하기도 했다. 몇몇 사람은 전날부터 나와 김밥 속 재료를 준비했고, 위생에 필요한 팔 토시와 머리두건 등을 만들어 오는 분도 있었다.
 
  김밥싸기 모임은 점점 더 알려져 많은 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분은 후원금을 보냈고, 어떤 분은 물품을 후원하셨다. 신기하고 감동스러웠던 점은 대구뿐 아니라 타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도 후원을 해주셨다는 점이다. SNS김밥도시락에 들어가는 귤이 필요합니다.” 라고 글을 올리면 제주도 사람이 귤을 보내주었고, “김밥재료에 들어가는 시금치가 필요합니다.” 라고 올리면 시금치 농사를 짓는 분이 싱싱한 재료를 보내주셨다. 우리는 후원자들께 감사했고, 후원자들은 직접 김밥을 싸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워했다. 거리는 멀지만 마음은 가까웠고, 그렇게 주고받은 마음들을 더 의미 있게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고민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지역경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원했기 때문에 재료는 대구지역 로컬푸드매장을 통해 구입했다. 이 소식을 들은 로컬푸드 매장은 재료를 원가에 납품해 주었다.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대방이 없었으면 나도 없었기에 내가 힘든 것보다 상대방이 힘든 것이 더 애처로웠다. 그 마음이 신기하게도 닮아서 우리는 서로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김밥을 싸다가 순간 흘러나오는 정겨운 말, 살아가는 이야기, 서로에 대한 배려와 걱정은 차곡차곡 쌓여 더 힘든 이웃에게 전달되었고, 우리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었다.
 
  6천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했던 대구의 신규 확진자 발생이 주춤해지는 등 대구의 코로나 상황이 나아짐에 따라 김밥싸기 모임은 종료되었다. 각자 생업이 있고 개인적 사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모임 마지막 날,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고 안아주었으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최근 코로나 사태 수습 국면인 우리나라와 달리 전세계 확진자는 아직도 확산 중이다.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고,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백신개발은 난항을 겪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은 채 살고 있다. 평소 호기로웠던 나는 코로나 사태 이후 감염이 두려웠지만 젊고 건강하며 전염병에 걸리더라도 치료를 통해 완치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원 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감염 위험 속에서도 이웃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선한 가치는 따스하고 굳건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 때, 희망의 씨앗을 심고 서로 물을 주며 정성의 손길로 싹 틔웠기에 이웃 사랑의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를 지역에서 나누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열매는 무성하게 열리고 있다. 내가 코로나 사태 이후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 열매의 달콤함을 한껏 맛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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