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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장려

코로나19는 슬픔을 낳고

권나경作

수성구

요양원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힘들게 생활하는 모습을 늘 곁에서 지켜보며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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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슬픔을 낳고
 
  코로나19의 커다란 태풍이 내가 근무하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온누리요양타운까지 밀어닥쳤다. 평소와 다르게 직원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매스컴에는 31번 확진자가 대구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대명동 신천지 대구 교회에서 발생 했다는 소리이다. 우리 요양타운은 확진자가 발생한 장소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 간호사도 확진되었다고 한다. 병원 주변은 접근 금지되어 장애물을 설치해놓고 병원에서 불과 100미터도 채 안 되는 곳에서 50여명의 어르신들이 머물고 계시는 곳이 우리 요양타운이다. 어르신들은 주야로 요양시설에 머무르며 의지하고 계신다. 며칠 후 대구광역시 남구보건소에서 TV에서나 볼 수 있던 의료진들이 하얀 방수복으로 우주인처럼 무장하여 서너 명이 우리 요양타운으로 들어왔다. 한 사람씩 입과 코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했다. 제일 먼저 겁 많은 나부터 검사가 시작되었다. 어르신들과 직원들 모두 검사를 끝내고 보건소 직원은 돌아갔다. 검사를 마치고 14일 기간 동안은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결과가 양성이 될 경우를 감안해서 마음의 준비까지 해 놓았다. 그동안 관공서에서 볼 일을 미리 해두고 집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있을 동안을 생각해서 마음은 단단히 비상각오를 하였다.
 
  코로나19로 한참 어려울 때 이른 아침에 2호실 박 씨 할머니께서 위독하셨다. 평소와 다르게 힘든 모습이었다. 출근 할 때 문을 여는 순간 제일먼저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하시며 유일하게 밝은 소리로 인사를 하시는 분이다. 그런 박 씨 할머니께서 인사도 없이 얼굴이 창백한 모습이다 말씀도 잘 하시지 않으시고 눈을 감고 계셨다. 어르신의 상태를 간호팀장님에게 전했다. 팀장님과 사무실 직원이 달려왔다. 병원으로 옮겨야 할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평소 다니던 병원에 연락하니 병실이 없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병원마다 환자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나는 박 씨 할머니 상태를 세밀히 살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 되었다. 급히 119에 전화했다. 소방대원 2명이 들것을 들고 요양타운에 왔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긴장 속에서 119 소방대원이 여러 군데 수소문해서 성서 쪽에 병실이 하나 있다고 해서 박 씨 할머니는 그렇게 들것에 실려 요양타운을 떠났다. 그런 후 박 씨 할머니 어르신은 세상과 이별 하셨다.
  방송에는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어 요양타운은 더욱 긴장 속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는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와중에 아흔이 훌쩍 넘으신 어르신 김 씨 할아버지도 병마와 싸우시다 돌아 가셨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요양원이다
 
  오늘은 여든아홉 살 되시는 송 어르신 생신날이다. 코로나19로 가족이 면회 올 수 없으니 내가 미역국을 끓여서 아침상을 차려드렸다.
  "송 어르신! 오늘은 어르신 생신이라서 미역국을 드립니다."
  했더니 송 노인은
  "선생님,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시며 눈시울을 적시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이 면회가 안 되어 외롭게 생신을 맞으시는 송 어르신께 내가 장만한 미역국이라도 대접 드리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는 김 어르신은 밤낮 대변 본 기저귀를 뜯고 난장판을 만든다. 밤새도록 치우고 씻겨드리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된다.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온누리요양타운에서 주간, 야간 번갈아 가며 근무를 하는데 오늘은 야근 하는 날이라서 낮에 부족한 잠을 채울 수 있어서 좋다. 주간 근무 날은 아침 일찍 출근 하자면 새벽녘에 일어나 준비해서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데 어느덧 6개월이 훌쩍 넘었다. 농촌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용 학원을 다녀 기술을 배워 국가기술 자격증을 취득하고 35년이란 긴 세월 동안 미용사로 살았다. 그런데 직업병이 찾아왔다. 손가락에 마비가 생겨 일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어쩔 수 없어 천직이라고 믿었던 미용 일을 정리 하게 되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언제나 가슴 한가운데에 남아있다. 당신이 편찮을 때 돌볼 힘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마지막 날까지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해 드린 것이 못내 아쉬워 지금까지 가슴에 멍울이 진다. 그래서 요양사로 직업전환을 해서 친정아버지께 못다 한 어르신 요양보호사 일을 선택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르신들을 내 부모 같이 정성들여 돌보려고 한다. 요양보호사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 전선에 나섰다. 요양 보호사가 된 후 처음으로 보살펴 드린 분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 용지아파트에 사는 독거노인 여든 살 되신 장 씨 할머니이다. 80kg 정도나 됨직한 뚱뚱한 몸인데 매일 운동을 시켜 드리려면 진땀을 빼고 성격이 괴팍해서 별 필요도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이것저것 시켜서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 그 할머니는 나에게 여왕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최선을 다 해서 보살펴 드렸다.
 
  3개월을 근무하고 이제 좀 더 크고 여러 어르신 분들이 계시는 요양원에 근무하려고 이력서를 들고 요양 시설을 방문 해 보았다. 연령제한, 경력 등을 갖추어야만 취업이 가능했다. 이력서를 들고 주, 야간 요양시설을 방문 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원장님께 면접을 받았다. 경력이란 단지 주간 보호 요양에서 3개월이 전부인 나로서는 선뜻 이력서를 내밀기가 부끄러웠다. 미용실 경력 35년까지 추가해 적고, 장애우 활동지원서 이수한 것을 경력사항에 부수적으로 썼다. 열심히 해 보겠다며 요양원 원장님께 인사드린 후 요양원을 나섰다. 며칠이 지났다.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 요양원에서 일할 수 있겠어요?"
  ",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원장님이 출근 하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기쁨은 한없이 컸다. 첫 출근 날, 설렘과 기대 반으로 주, 야간 3교대에 일하게 되었다. 첫 출근 근무가 야간 근무가 되었다. 지금까지 야근 근무라고는 단 한 번도 해 본 경험이 없어서 야근근무를 하려니 출근 한다는 기쁨은 잠시일 뿐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잔뜩 긴장된 마음을 풀고 야근 담당 요양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에 선배인 요양사로부터 근무할 요양원 4층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안내받았다. 각 방마다 침대에 누워계신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인사 드렸다. 장기 요양 2등급이신 어르신 다섯 분, 3등급이신 어르신 네 분 모두 아홉 분 어르신이 머무르시는 곳이다. 지적 장애를 가진 어르신, 파키슨병을 앓으시는 어르신,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 어르신들이며 아흔 살을 넘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근무 하는 곳 4층은 인지가 전혀 되지 않는 어르신들만 계신 곳이라서 잠시도 한 눈을 팔수 없어 긴장 속에서 주, 야간 근무 하는데 초보자인 나로서는 걱정이 앞섰다.
 
어르신 한분 한분마다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지셨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서 요양사인 나의 힘에 의지하여 생활하신다.

 
  야근 근무 중에 구씨 할머니께서 바지에 변을 보셨다. 처음 보는 일이라서 당황할 겨를도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서 신속하게 처리해야 어르신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지를 벗겨 처리한 후에 깨끗이 뒤처리를 해드렸다. 어르신들이 어떤 불편이 있으신지 항상 상황판단을 잘 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나는 요양보호사다. 책임지고 최선을 다하며 어르신을 잘 돌봐 드리는 것이 나의 의무다' 이런 각오로 모든 힘든 일을 일사천리로 하게 되는 용기가 샘솟았던 것이다. 7년간 경관으로 주입하며 콧줄로 연명 하시는 어르신은 하룻밤 검은 피똥을 밤이 새도록 쏟아 내었다. 빨갛게 핏발 선 눈으로 밤을 하얗게 새운 것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봉사와 희생정신 때문이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가 특별재난지역으로 발표되었다. 2미터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마스크착용, 개인위생 수칙 등 코로나19 예방수칙이 실시되었다. 긴장 속에서 요양타운 어르신 돌봄은 각별히 신경 쓰고 철저하게 위생에 신경 썼다. 지역 미용봉사 단체에서 2주에 한 번씩 우리 요양타운에 미용 봉사하러 오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직원 외에 출입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무실 직원에게
  "어르신들이 머리가 덥수룩해 보이니까 제가 미용을 해 드리면 어떨까요?" 하니까 직원이
  "권 선생님이 어르신 미용 봉사할 수 있겠어요?" 하기에
  "지난 날 미용을 오랫동안 해서 코로나19로 봉사 팀들도 못 오니까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했더니 직원은 고맙다며 좋아했다.
 
  그동안 내 몸이 불편하여 미용을 그만 두었어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미용봉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요양원 미용봉사 날을 정해서 먼지 묻은 미용기구를 깨끗이 손질하여 가방에 챙겨 넣었다. 주간 근무 날 오전에 출근해서 어르신 세 분을 목욕시켜드리고 점심시간에 열여덟 분 어르신들을 이틀간에 걸쳐 미용 손질해 드렸다. 말끔해지신 어르신들은 모두가 좋아 하셨다. 나를 보고 직원들은 모두
  "선생님! 최고 입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 몸은 고되지만 생의 마지막 삶을 힘들게 연명하시는 부모님 같으신 어르신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가족과 전화로만 안부를 듣게 되는 요양타운 어르신들! 가족들의 모습이 얼마나 그리울까? 얼른 코로나19가 끝나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족 간에 언제든지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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