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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장려

하얀 목련, 꽃 피다

권영욱作

북구

목련이 하얗게 빛났다. 코로나19라 해도 실망은 않는다. 묵묵히 피워 세상을 환히 밝힐 뿐. 병원 뜰에 핀 목련은 더욱 하얗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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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목련, 꽃 피다
 
  2020년도 봄이 그렇게 오나보다 했다.
  다소 약간의 긴장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구는 청정지역이라며 스스로들 위안을 삼았다.
  아파트 화단에 매화가 피기 시작하고 경상감영공원의 꽃나무들도 봄 치레 준비를 끝내고 하나 둘 꽃을 피워내기 시작을 해 올해 대구의 봄도 그렇게 시작이 되나 했다, 적어도 그 날 31번 환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대 이변이 일어났다.
  숨을 쉬기조차 겁이 났다.
  대구가, 대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청도가 뒤집어 놓았다. 대구 경북이 곧 코로나로 연결되었다.
  안부 전화가 빗발쳤다.
  도시가 벌벌 떨었다. 도로도 떨고, 대중교통도 떨고, 심지어 가로수도 떨었다.
  만나기를 꺼렸다. 집안에서 머물고 이동을 가급적 하지 말라 했다.
  마스크가 귀한 대접으로 떠올랐다. 줄을 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250번 번호표에서 235번을 받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번호표를 받지 못한 사람들한테 미안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번호표를 주머니에 잘 질러 넣어놓고 여러 번 확인을 했다. 다음날은 일찍 서둘렀다. 300번 번호표에 54번을 받았다.
  목련꽃봉오리가 오동통하니 살이 부쩍 올랐다. 우체국이 생기고 나서 이렇게 긴 줄을 목련나무도 처음 보았을 게다. 이 줄이 무슨 줄인지를 목련이 알고 있다면 목련나무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재택근무로 오갈 데 없이 같은 신세가 된 것 같아 그리 춥지도 않은 날씨에 어깨가 괜히 움츠러들었다.
  며칠사이 코로나19 거점 병원에 전국에서 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지원을 해왔다고 했다. 가운처럼 하얀 목련이 금방이라도 필 것처럼 부풀었다. 계속 늘어가는 확진자 수에 힘내라는 응원 구호를 외칠 준비를 끝냈다는 듯 바람에 제법 흔들거리기까지 한다. 의사가 간호사가 자원봉사자가 봄꽃 대신 꽃이 되는 순간이다. 달빛아래 묵묵히 꽃을 피우는 목련처럼 봄꽃 대신 하얀 방호복이 꽃이 되었다. 그 날은 350번 번호표에 340번을 받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목련나무로 인하여 지루하지 않았다. 자꾸만 목련꽃과 방호복을 입은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가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흔들림 없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줄을 서고 있는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가족을 방패삼아 위안을 삼았다.
  꽃도 사실 알고 보면 진한 아픔을 안고 피는 걸 거야. 열매를 맺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할 거고, 꽃샘추위라도 닥치면 꼼짝없이 견뎌야만 하니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닌 게 분명한 거야. 우리가 꽃향기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사실은 벌 나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한 처절한 외침인거 거든.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들도 꽃처럼 자신을 희생해 방호복 속 땀띠로, 고글 자국에 반창고로, 보고 싶은 가족들에 대한 눈물로 열매를 맺기 위한 거룩한 싸움을 처절하게 견디고 있는 거야. 목련꽃도 봉오리 안에서 어떤 싸움을 견디고 있는지 본 적은 없으니.
  외출에서 돌아오면 손부터 씻고 오늘 누구를 만났던가를 떠올려 놓아야 했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은 상상 그 이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라고 한다. 서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잘 견뎌내라고 하면서 마스크를 좀 보내준다고 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친구의 전화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서울도 만만치 않을 텐데 하는 생각에 주소를 보낸다고 해놓고는 며칠을 지냈다. 또 다시 전화가 왔다. 마음만 해도 고맙다고 했더니 기어코 주소를 보내라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리적 거리두기와 심적 거리두기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서도 마음은 더욱 가까이 하라고 안내를 하였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친구의 전화에 사람을 만날 때마다 불안해했던 마음을 좀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감염이 된다면 내 주변 밀접접촉자가 다 격리되는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긴장되었던 순간들을 적절한 거리두기와 마음 주고받기를 통해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몇 주면 상황이 개선되리라는 기대감이 무너졌다. 병원 감염이 집단으로 일어났다. 세계가 감염공포에 빠져 들었다.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과연 일상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인가. 이제 확진자의 이동 경로에 일희일비 할 시기도 지났다. 어느 빌딩이 폐쇄되었고 어느 마트 식당이 폐쇄되었다는 것이 대단한 뉴스가 못 되었다. 감염병 예방 수칙을 잘 따르며 조심스레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다. 가족끼리는 믿을 수밖에 없다. 회사 동료 간에는 적절한 거리두기를 통해 믿음을 쌓아간다. 오랜만에 꼭 만나야 하는 친구들과의 사이도 마스크와 손소독을 거치면서 서로간의 두려움을 해소해나간다.
  꽃들은 신뢰할 수 있다. 그 사이에 매화는 피었다 지고 목련도 활짝 피었다. 벚꽃 또한 제 철을 알고 있어 제때 피었다. 꽃은 누가 찬사를 보낸다고 서두르지도 않고 누가 지켜보지 않는다고 게으르거나 대충 필 생각이 없다. 다만 일찍 피었다가 꽃샘추위에 다시 얼어붙기도 하고 세찬 바람에 꽃이 일찍 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렇다 해서 다음해에 꽃 피기를 두려워하거나 숨을 생각이 절대 없다. 그만큼 스스로를 신뢰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게 꽃이다. 꽃처럼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를 신뢰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감염병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 스스로를 신뢰하게 되면 그만큼 두려움이 줄어들고 그 신뢰가 쌓이게 되면 감염병보다 더 신뢰의 전파가 빠르게 된다. 그러면 서로를 믿게 되고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두려움을 떨쳐낸다는 것이다.
  서서히 도시가 꽃처럼 피어난다. 확진자가 줄어서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신뢰가 믿음이 쌓여가는 때문이다. 치료센터와 병원에 격리 환자가 줄어들고 있다. 안타깝게 유명을 달라 하신 분들도 늘어났지만 꽃이 피어나듯 도시가 차츰 밝아지고 있다.
  하늘이 맑아졌다고 한다. 세상의 공장들이 멈춰서라고 한다. 앞산이 이리 앞에 와 있었던 적이 언제 적이었던가?
  앞산 중턱에 핀 벚꽃이 환하게 보인다. 산 정상에 선 사람들이 다 보인다. 누군가가 자연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바이러스라고 했다. 사람들이 활동을 멈추자 산이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자연이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다고.
  어느새 목련이 졌다.
  하얀 목련이 혼자서 피었다가 졌다. 매화도 벚꽃도 그렇게 이 봄을 다녀갔다.
  병실을 분주히 드나들던 발걸음들도 꽃들처럼 제자리로 거의 돌아갔다.
  꽃은 떠나가도 그냥 떠나지 않는다. 중요한 메시지로 씨앗을 남긴다.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이 봄의 이었다.
  2020년 대구의 봄.
  그냥 가지 않았다.
  한 순간에 도시를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꽃들이 보여주었다.
  마스크를 사려 줄을 서는 사람들을 보며 목련꽃이 말을 했다면 뭐라고 했을까?
  전국에서 모여든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꽃이라 했었을 꽃들.
  꽃들을 보고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꽃이 되어 보라며 목련꽃 하얀 이파리가 골목을 덮었다.
  함부로 밟을 수가 없다.
  벚꽃잎이 올해 봄은 참 대단했다며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한 구석에 소복이 모였다.
  이제 장미가 피어난다.
  해보다 더 붉은 빨간 장미가, 핏빛보다 새빨간 장미가 도시를 깨우려 피어난다.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대구 시민, 온 국민은 이 봄에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었다는 걸 기억하며 도시가 나라가 장미 향기를 쫓아 도담도담 깨어난다.
  아직도 끝난 게 아니라며 재난 문자가 수시로 오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많이 아팠던 만큼 성숙하고 강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모든 꽃들이 신뢰 속에 피어나듯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꽃이 되는 법을 알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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